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 스텔라 (문단 편집) === [[현대 쏘나타#s-4.1|소나타]](Y1, 1985~1988) === ||[[파일:Sonata_85_Studio_Shot01_02.jpg|width=100%]]||[[파일:Sonata_85_Studio_Shot01_04.jpg|width=100%]]|| ||<-2> 전기형 모델 정, 후측면 || ||<:><#ffffff,#2d2f34>[youtube(w8oDB4mTr7E)] || >'''VIP를 위한 고급승용차 - 소나타''' >'''정상의 기술, VIP 승용차 - 소나타''' 쏘나타 1세대(Y1)는 스텔라(Y1)의 고급형 버전이었다. 코드명이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같은 차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외관도 기본적으로 똑같았고 단지 크롬 몰딩 장식이 더 붙어 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당시 쏘나타를 샀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스텔라라 불러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차주들이 많았다. 특히 스텔라 APEX나 스텔라 88 같은 상위 트림이나 후기형은 쏘나타와 구별이 쉽지 않았다.[* 스텔라 APEX나 88같은 상위트림, 후기형 모델은 그릴이 크롬 몰딩으로 되어 있어서 쏘나타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쏘나타는 그릴 이외에 범퍼까지 크롬 몰딩이 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이것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스텔라 1세대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소나타 1세대는 실패했다. 그렇게 고급형 소나타는 사라지고 대중형 스텔라가 살아남아 2세대로 이어졌지만 2세대의 이름이 스텔라가 아닌 '''[[현대 쏘나타|쏘나타]]'''로 정해진 것은 외국 바이어들이 쏘나타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쏘나타 1세대는 1985년 11월 4일 처음 출시되었다.[* 원래는 동년 9월 말이었지만 미루어졌다.][* 등장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그라나다가 유럽 포드의 모델 체인지로 인한 부품 공급 중단 선언으로 1985년 연말에 단종을 앞두고 있었고(1984년 5월에 포드에서 부품 공급 중단을 통지했으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5190009920703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5-19&officeId=00009&pageNo=7&printNo=5602&publishType=00020|#]] 그나마 부품 공급을 조금 더 연장해서 1985년 연말까지 생산했었던 것이었다.), 그라나다의 후속 모델인 그랜저의 경우는 그때까지도 개발이 완료되지 못해서 출시 당일까지 시일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스텔라의 차체를 활용하여 그 간극(1986년 1월~7월)을 메울 차종을 급하게 개발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42400329202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4-24&officeId=00032&pageNo=2&printNo=12175&publishType=00020|#]]] 당시 현대자동차의 [[FR(자동차)|FR]] 중형세단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하여 4기통 1.8과 2.0리터 [[미쓰비시 시리우스 엔진]]을 올리고,[* MPI는 아니었다. Y2부터 MPI가 달린다.] 크루즈 컨트롤, 전동 시트 등 당시로서는 고급 편의 사양을 탑재[* 대부분의 고급사양들이 국내 최초 적용인 것도 그렇고, 외장 디자인 쪽에서도 최초로 시도됐던 부분들이 상당수 있었다. 가령, 전면의 백색 방향지시등(이것은 '첩보'를 입수한 대우가 프린스를 페이스리프트하면서 먼저 써먹었다.), 앞뒤 휠아치의 스테인리스 몰딩, 트렁크 키 오너먼트(나중에 대우에서 살롱에 모양만 따라 붙였을 정도로 참신한 시도였다.) 등이 그것이다.] 하고 외관에 크롬 몰딩을 대거 사용하여 스텔라를 고급화한 버전이다. 마르샤의 직속 선배격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르샤는 최소한 쏘나타와 외관 디자인은 달리했지만 Y1 쏘나타는 스텔라와 외관 디자인조차 동일했다. Y1라는 코드명 자체가 스텔라의 것이다.[* 당시에는 Y였다. 나중에 2세대 쏘나타가 Y2가 되면서 자연스레 Y1이 된 것이다.] 따라서 1세대 쏘나타는 스텔라와 같은 차로서 그 상위 트림에 가까우며, 실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했다. '스텔라의 상위 트림에 쏘나타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서 판 것이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른다. [[대우 로얄|로얄]] 시리즈[* [[독일]] [[오펠]]에서 개발한 모델이었다.]가 점령하다시피 한 중대형 고급차 시장에 도전했으며, 경쟁모델로 겁도 없이 로얄 살롱을 지목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모델인 스텔라는 스펙상 로얄 프린스 시리즈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79년 출시 당시부터 고급차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로얄 시리즈와 달리 스텔라는 프레스토, 포니에서 이어지는 대중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여 스텔라는 당시 중산층을 공략하여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출시 8개월 후에는 그랜저를 출시하여 최고급 대형차 시장도 결국 장악해 나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톱 모델인 그라나다[* 그랜저가 출시되는 것은 쏘나타 출시 약 8개월 후이며, 쏘나타 출시 당시의 톱 모델은 그라나다였다.]와 스텔라라는 커다란 갭 사이에서 로얄 시리즈는 여전히 건재했고,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출시한 차량이 바로 스텔라를 고급화한 1세대 쏘나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랜저가 출시되기 1년 전인 그 시기에는 그라나다의 판매량은 많지 않았으며 중대형 고급차하면 대우 로얄 시리즈라는 선입관이 컸고, 쏘나타는 스텔라와 똑같은 차체에 엔진과 편의장치만 변경한 상태여서 소위 1,500cc 차량인 스텔라와의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차는 부의 상징이여서 소위 '''뽀다구'''가 중시되는 분위기였다. 즉 주행성능, 편의장치 등은 별로 어필하지 못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엔진 퍼포먼스를 올리고 고급차에 준한 편의장치를 채택했어도 차를 보는 제3자가 "그거 스텔라와 비슷하게 생겼구만" 하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냥 그 급의 차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소형차 엔진이라도 중형차급의 차체, 중형차 엔진이라도 대형 차급의 차체를 가진 차량이 유행했었는데, 하급 모델인 스텔라 차체에 2,000cc 엔진을 얹었던 쏘나타 1세대와 정반대로 상급 모델인 레코드 로얄의 차체에 1,500cc 엔진을 얹은 로얄 XQ는 날개돋친 듯 잘 팔려나갔다.] 애초에 스텔라와 같은 차체인 만큼 대우 로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차체 크기에도 열세이다 보니 사실상 실패한 모델이었으며 또한 가격도 당시에 고가에 속해서 판매량이 높지 않았다. 특히 차체 크기가 로얄시리즈 보다 열세인 만큼 실내공간이나 뒷좌석 레그룸에서도 불리했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 이라면 이정도 급의 차량도 [[쇼퍼 드리븐]] 수요가 많았던 만큼[* 광고에서도 VIP를 위한 고급승용차 라는 문구 라던가, 뒷좌석 파워시트 같은 옵션만 봐도 쇼퍼 드리븐 수요도 어느정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도 치명적이었다. 당시 로얄 살롱 2.0 [[자동변속기]] 사양이 1,278만원인데, 쏘나타 2.0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원[* 참고로 당시 로얄 살롱 수동 모델은 1,245만원, 소나타 수동 모델은 1,267만원이었다.]으로 로얄 살롱보다 차체 크기는 작으면서 가격은 더 비쌌다. 그라나다가 단종됐을 무렵(1986년 1~2월)에는 자동차 수입 자유화가 실시되기도 이전이었던 만큼 잠시나마 국내 최고가 승용차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 당시 판매량은 하루 평균 27대로 의외로 로얄 살롱의 하루평균 32대와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3000209202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30&officeId=00020&pageNo=2&printNo=19869&publishType=00020|#]] 사실 이렇게 보면 쏘나타의 판매량이 로얄 살롱에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안 팔리는 차, 쉽게 보기 어려운 차로 인식된 것을 보면 실제로는 쏘나타가 많이 굴러다녔지만 대부분 스텔라로서 인식됐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이면 이미 대우에서는 로얄 살롱보다 상급의 고급차로 트립 컴퓨터와 전자제어식 엔진(EFI)을 장착한 로얄 살롱 슈퍼를 이미 내놓은 시점이고 기존의 로얄 살롱 구매층들이 로얄 살롱 슈퍼로 대거 옮겨가던 시점이었다.[* 당시의 이런 뽀다구 중시 상황은 그 반대로도 적용된다. 즉 사회적 지위상 '뽀다구'를 내면 안되는 사람들은 지불능력이 있어도 뽀다구가 나지 않는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쏘나타 Ⅱ의 플랫폼을 가지고 외관을 약간 바꾸고 편의장치를 그랜저급으로 향상해서 내놓은 현대자동차에서 소위 쏘나타를 타기에는 위신이 서지 않을 것 같고 그랜저를 타기에는 상사에게 눈치가 보이는(그 당시에는 아무리 부자라도 직급이 높은 사람보다 좋은 차를 타는 것이 눈치보이는 일이었고, 그런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나 업종은 지금도 상당히 남아있다.) 사람들을 위해 만든 마르샤라는 실패한 차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ffffff,#2d2f34>[[파일:external/avto-russia.ru/hyundai_stellar_1.jpg|width=300]] || 하지만 의외로 Y1은 수출이 됐는데[[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52300099207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5-23&officeId=00009&pageNo=7&printNo=6222&publishType=00020|#]]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5190009920102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7-05-19&officeId=00009&pageNo=1&printNo=6524&publishType=00020|#]], 주로 [[캐나다]]로 수출됐고 현지에서는 스텔라 II [[https://www.ebay.com/itm/1987-Hyundai-Stellar-II-12-page-Original-Canada-Car-Sales-Brochure-Catalog-/311479159784|#]] [[https://www.ebay.com/itm/1987-HYUNDAI-Stellar-II-2-Vintage-Original-Print-AD-Gray-car-photo-french-canada-/263425865770|#]] 혹은 스텔라 2000[[http://celsior.pixnet.net/album/photo/499386471|#]] (대만 수출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그 동안은 1.6리터 엔진을 얹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파워가 약했지만 2.0리터 엔진으로 파워를 보강했을 뿐이다. 애초에 '소나타'는 그냥 '스텔라'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위 차종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소나타라는 다른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물론 이는 국내 시장에서 먹히지 않았다.] 물론 국내 사양에 비하면 옵션도 몇 개 빠져서 옵션은 스텔라에 더 가깝고, 범퍼 등 외관의 크롬 장식도 삭제됐다. 한마디로 스텔라에다가 쏘나타의 엔진을 얹고 쏘나타의 옵션을 약간 추가한 것에 가까웠다.[* 다만, 크롬 장식이 없을 뿐, 그 외의 모든 부분은 그냥 소나타 그대로였다. 애초에 소나타는 스텔라에 배기량이 큰 엔진을 얹은 것의 내수 전용 이름이었을 뿐이고, 해외에서는 새로운 이름이 붙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스텔라 2.0은 LPG엔진 사양으로 Y1 소나타가 단종되기 직전인 1987년에 국내에 택시 전용으로도 출시 됐으며 자가용으로는 Y1 소나타나 Y2 쏘나타와의 판매간섭을 우려하여 출시되지 않았으며, Y1 소나타가 단종되고 스텔라 자가용 모델이 단종된 이후에도 1997년까지 까지 스텔라 1.8과 함께 LPG 택시 사양으로 꾸준히 생산됐다.[* 이때 대시보드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소나타의 것으로 바뀌었다. 애초에 소나타는 그냥 스텔라에서 일부 디자인만 바꾼 것이므로 소나타와는 거의 100% 호환이 됐고, 이 부품이 스텔라 후기형에 그대로 사용됐다.] 전주 평화동 현대아파트에 이 차가 있다. 소나타 모터쇼에도 나온 것으로 유명하며, 1.8i 모델이다. 경기도 [[광주시]]에서도 소나타[* 1.8i 모델이며, 휠커버가 달려있다. 이 정도면 희소성이 더욱 높아진다.]가 한 대 발견됐으며, 보배드림에 그 매물이 올라와있다.[[https://www.bobaedream.co.kr/mycar/mycar_view.php?no=2106244&gubun=K|#]] 비운의 차량이다 보니 현대자동차의 [[올드카]] 중에서도 잔존대수가 극히 적은 편이다. 국내에 많으면 200~300대가 있는 것[* '''5,000만명이 살고 2,400만대의 자동차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200~300대'''는 사실상 눈씻고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숫자다. 게다가, 도난이나 압류 등의 이유로 차는 사라졌지만 제대로 말소가 안 된 차량들도 약간씩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잔존개체는 더 적게 계산해야 한다.]으로, 이는 [[기아 브리사|브리사]]만큼 희귀한 수준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현대 쏘나타, version=2251, paragraph=4.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